흐릿흐릿한 날씨. 느릿느릿 걸어서 시험장으로 들어선다.
가방 멘 사람들이 아침 일찍 움직이는 모습들. 가끔 시험을 보러 오면 고등학교, 중학교 다닐 적 생각이 난다. 별 신날 것도 없던 그때가 조금 그립다.
기출문제들을 꺼내 놓고 시험준비를 한다. 흠... 실기 시험이라고는 해도 객관식. 좀 이상하다 싶다. 그래도 뭐. ^^;
멍하니 두리번거리다가 보니 교실 한편에서 대학 동기를 만났다. 진작에 제대하고 졸업을 앞둔 친구를 여기서 보다니 세상 정말 좁다.
뭐 별일 없이 시험이 끝나고 (별일 있으면 안 된다. -_-) 친구를 꼬셔 점심을 얻어먹으러 근처 허름한 중국집엘 갔다.
짬뽕 그리고 짜장면. 배달이 아니라 가게에서 바로 먹는 거라 그런지 양이 넉넉하다. 어제 청주로 괴롭힌 속을 얼큰한 국물로 달래며 사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친구는 졸업 전에 벌써 취업했다고 한다. 부러움이 물씬.
점심 먹고 집에서 처박혀 있다가 저녁때가 되어서야 또 어그적어그적 걸어나간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지하철을 갈아타고 명동으로 향한다.
웅성거림으로 가득 찬 명동역. 지나는 사람들의 발자욱을 담다.
어제 받아 온 콘택트렌즈를 끼고 바라본 세상은 조금 뿌옇다. 도수가 정확히 맞는 게 아니라 그런가. 그래도 어렸을 적부터 써왔던 안경을 벗고 있으니 신기하기만 하다.
주희 누나를 기다리는 중. 조금 일찍 도착한 덕분에 넉넉히 기다림을 즐긴다. 눈곱만 하게 보이는 초승달이 이른 저녁 하늘을 비춘다.
제각기 움직이는 차와 사람들. 그 흐름을 눈으로, 카메라로 쫓는다.
누나가 도착했고 불빛이 가득한 명동거리를 지나 맥주를 마시러 갔다.
시원한 맥주 한 컵과 오랜만에 본 지인과의 대화. 고즈넉하다.
맛있는 안주와 함께 맥주를 잔뜩 마시고 있다 보니 소희양도 도착. 그러고 보면 다들 일하느라 고생이 많다.
소희양이 준 일본 과자. 얼마간의 맥주와 얼마간의 이야기를 실컷 들이키고는 자리를 뜬다.
휘영청 밝던 불빛이 꺼져가는 명동 한복판을 지나 집으로 향하는 소.주 자매를 바래다준다.
안경점에 들렀던가. 그리고 나서는 혼자 지하철을 타러 걷는다. 흔들흔들 음악과 불빛에 취해간다.
빛을 담는 기계를 만지작만지작.
한국은행 건물 앞으로 스치는 빛을 잡다. 쉬지 않고 달리는 불빛. 나도 끊임없이 나아가야지.
을지로입구역을 향해 걷는다. 넉넉한 분위기의 포장마차를 지나치고 바삐 걸음을 옮기는 사람을 피해가며 잠시 잠깐 멈춰 서 이 순간을 기록한다.
어스륵하게 불을 밝힌 길을 따라가는 걷는다.
한산한 분위기의 역 안으로 들어선다. 낮에는 사람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로 가득 차있지만, 지금은 조용하기만 하다.
구부정한 포즈로 바라보는 나. 나 자신.
의자에 놓인 누군가의 라이타. 불을 켜고 흔들흔들 장난을 친다. 불장난?!
껌을 한 통 사들고는 심심해져서 서성거리기 시작한다. 승강장을 따라 걷기 시작.
아무래도 다음 열차를 타야겠다. 벌써 삼성행 막차가 다닐 시간.
조금씩 움직이는 나를 바라본다.
지하철을 한 대 보내고 얼마간을 걷다 보니 타야 할 열차가 들어선다.
껌을 하나 꺼내어 입안에 털어 넣는다. 종이는 곱게 쪽지를 접는다. 습관적으로 접게 되는 쪽지 모양은 왠지 두근거리는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신고 나온 검은 신발은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형형색색의 사람들을 구경하며 또다시 걷기 시작. 아무래도 방랑기가 있나 보다. -_-;
신발모양, 색깔 다들 제각각 이라서 왠지 그 신을 신은 사람의 성격이랄까 하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보며 혼자 즐거워해 본다.
제각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오늘 하루를 곰곰이 되짚어 본다.
강변역에 내린다. 지하철이 끊길 시각. 거리는 택시와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거리 풍경을 스치며 집으로 향한다. 조금씩 부는 바람은 연둣빛 나뭇잎을 흔든다.
번잡한 거리를 지나 조용한 골목으로 들어선다. 드물게 지나는 차의 불빛만 길게 여운을 남긴다.
환한 불빛들이 길을 주홍빛으로 물들인다. 그 빛을 따라서 터벅터벅 몸을 이끈다.
길가의 작은 불빛과 그림자를 신기해한다. 낯선 풍경은 언제나 반갑다. 곧 이 길도 익숙해지겠지만.
회색빛 도로를 선명히 밝힌 가로등을 지나 집에 들어선다. 오늘도 긴 하루 여행이 끝났다.
postScript 스승의 날이네요. 꾸준히 찾아뵙고 기억할 수 있는 선생님이 거의 없다는 게 조금 서운한.. 그런 날. ^^ 다들 어떻게 보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