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후.
오늘은 바쁜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맛난 점심 먹으러 명동엘 간다.
휴가는 이래서 좋다.
요즈음엔 일식을 하는 음식점이 유행처럼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그 중에도 수준급의 가게들이 예전보다 많아졌다. 일식을 즐기는 나로서는 꽤 반가운 일.
명동 근처에 사는 소희를 불러내서
가쓰라에 갔다.
소희가 시킨 돈까스 정식. 바삭하니 맛나 보여 몇 점 뺐어 먹었다.
내가 시킨
오야코동(親子?).
부모와 자식이 올려진 덮밥이란 뜻의 닭고기 계란덮밥.
일본에선 흔한 음식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들다.
한번 먹어보고 싶었던 것치고는 꽤 평범한 맛.
만 원짜리 신권을 처음 본 날이니까 기념촬영. 그러고 보면 별걸 다 찍는다.
밥도 먹었으니 커피빈에 가서 오랜만에 수다 삼매경.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커피도 즐기는 편이라
나는 계집아이처럼 커피숍 가는 걸 즐긴다. 가끔은 혼자 가기도 할 정도.
선물 받았다는 소희양 핸드폰 고리가 예쁘다.
역시 여기도 한가하다. 아늑함이 노곤하게 다가온다.
며칠 전 받은 공짜 티켓은
중앙시네마에서 평일에만 쓸 수 있는 것이라서,
들어가기 전에 써버려야지 하는 생각으로 소희를 끌고 영화를 보러왔다.
역시나 여기도 월요일 효과 덕분인지 비어 있다.
드문드문 사람이 들어오긴 하지만 빈자리가 사람 수보다 많다.
두 다리 쭉 뻗고 영화 볼 준비 끝. 내가 여길 전세 낸 것 같은 기분이다.
오늘의 관람 메뉴는
최강로맨스. 현영과 이동욱이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
별 기대 없이 본 것치고는 생각보다 재밌었다는.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지우가 이 근처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소희양을 먼저 보내고 엊그제 내게 공짜 선물을 해준 스타벅스를 지나쳐
지우를 만나러 간다.
명동에서 충무로로 가는 길목에서 지우를 만났다.
지우는 아는 사람 카메라를 골라주러 나왔단다.
걷다 보니 남산타워도 보인다.
카메라 가게 몇 군데를 들르며 지우랑 잠깐 이야기하다 보니 벌써 다시 움직여야 할 시간.
충무로역에서 지하철에 올라 지우를 보내고서 나도 부랴부랴 길을 나선다.
삼각지에서 6호선을 갈아타고 도착한 곳은 오랜만에 들른 광흥창역.
회사 다닐 적 매일 드나들던 곳이 이젠 꽤 낯설다. 푸른 화살표 불빛을 따라서 거리로 나선다.
전엔 회사 건물이 보였는데 이젠 한참 공사 중이던 건물이 다 지어져 빽빽이 가리고 서 있다.
괜스레 반가운 건물. 너는 아직 그대로구나.
사무실에 들어가 이것저것 출력하고 다들 퇴근할 때까지 시간을 때운다.
오랜만에 다 함께 술 한잔하기로.
그동안 성원형의 앙증맞은 은색
ipod shuffle도 구경. 붉은색 보호필름을 붙여놨었는데 떼었단다.
시간 보내다가 보니 저녁때가 좀 지났다. 출출해서 컵라면을 한 그릇씩.
익숙한 사무실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야근 분위기.
드디어 다들 퇴근하고 고깃집에 모였다. 홍대입구역 근처 맛난 고기와 껍데기를 파는 집.
한참 술을 먹다 자리를 옮기러 나서는데 저런 간판이 붙어 있다.
영화 초반 '비계 떼고 먹어 이 년아.' 장면이 이곳이라는 듯.
화면발인 건가. 영화와는 느낌이 좀 다른데..
자리를 옮겨 찾은 곳은 부침을 파는 집.
오랜만에 뭉친 사람들인지라 즐거운 이야기들로 술잔을 채워 들이킨다.
다들 어울리는 걸 좋아해서 자주 모였었는데 뿔뿔이 흩어지고서는 꽤 오랜만인 모양.
한참 술을 마시다가 '물이 넘치는' 화장실엘 들르고서는 또다시 자리를 옮긴다.
커피를 한잔 사들고 찾아간 곳은
카페AQUA.
회사 다닐 때 가끔 찾던 장소를 같이 일하던 사람들과 찾아오니
반갑고 익숙한 느낌. 문득 아직 내가 사회에서 일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술을 기다린다.
조금씩 흔들리는 사람들 사이로 서로 사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다들 열심히 살고 있다는 느낌. 나도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
노란빛의 액체를 목에 털어 넣으며 쌓였던 고민을 털어 낸다.
호세꾸엘보를 마지막으로 긴 술자리를 떠난다.
지하철이 끊기기 전, 동네에 돌아왔다.
아파트 어귀에 들어서며 긴 하루 동안의 여유가 남긴 여운을 되새긴다.
내일이면 다시 돌아가야 할 마음에 아쉬움을 남긴다.
postScript
오늘은 글이 좀 길군요. ^^;
여기까지 다 읽어주셨다니 감사하네요.